익숙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 일상 에세이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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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낯선 도시나 해외로 홀로 여행을 떠날 때면 이방인이 된 나를 발견하곤 했다. 세상은 본래부터 나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이내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러한 고립감은 낯선 이방인을 향하는 무관심한 시선을 통해 가중되곤 했다. 여행 중에 만난 인연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러한 만남의 순간을 통해 비로소 고립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만났던 인연들을 기억해 본다. 누군가와는 사랑을 했고, 누군가와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누군가와는 짧게나마 함께 여정을 같이 했다.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는 모든 소중한 인연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ㅡ 9 더 사랑하고, 더 사랑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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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에 대하여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만큼,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일에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가 동일한 방향에서, 동일한 깊이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바라볼 수 없는 방향에서, 서로 다른 깊이의 고백을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상대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제로 모든 사랑은 언제나 불균형적이다. 누군가는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기뻐하고,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 있음에, 또한 누군가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음에 말이다. 성숙한 사랑의 마음가짐은 언제나 이러한 불균형성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에게 ⏐ 일상 에세이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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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가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이들을 우연히 발견하곤 한다. 구글 SEO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글들이라 대부분 검색에는 걸리지 않는, 어쩌면 돈 안되는 이야기들 적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터넷 상에 글을 써왔다. 그러니까 거의 처음으로 나만의 노트북을 갖게 되었던 스무살 무렵부터 적어도 10년이 넘게 글을 써왔다. 그래서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싸이월드가 한창이던 때는 새벽 3시, 나만의 감성 터지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가 다음 날 지우기 일쑤였고, 페이스북이 인기있던 때도 다음 날 이불킥을 차기 일쑤였다. 지금에야 그런 글을 잘 공유하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
밤의 산책 ⏐ 일상 에세이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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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내 보다,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새롭게 건축되고 있던 아파트들에 둘러 쌓인 가을 골목의 풍경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던 연인들. 가맥집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담뱃재를 털어내는 아저씨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가족들을 우리는 지나온 터였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졌고, 한 걸음 내딛는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은 나무다리의 떨림을 새삼스러워하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았고, 연꽃잎이 듬성듬성 보이는 호수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좁고 으슥한 길로 들어섰다. 시지푸스의 밤은 어떠..
ㅡ 8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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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에 대하여
사랑에 대해 무어라 쓸 때면 매번 부끄러워지지만, 그럼에도 계속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는, 새로운 언어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이내 무뎌지고 마는 숱한 사랑의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에서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 내는 일상 속 사랑의 순간들이 매번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모두의 최선이라 믿는다. 사랑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모두는 저마다 최선의 사랑을 한다. 사랑에 대한 나의 최선이 과연 최선인지 고민하며, 그러한 최선이 과연 사랑일 수 있는지 고민하며, 사랑에 대해 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랑인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매번 새롭게 사랑의 내연과 외연을 다듬어 가기를 기대하며 나는 쓴다.
ㅡ 7 사랑이라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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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도착지가 아닌 이정표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기로에서 사랑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변치 않을 영원한 사랑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이다. 완벽한 사랑도, 완성된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정에 여정을 더하듯, 사랑에 사랑을 더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랑에 실패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있을 뿐이다.
생각과 삶⏐ 일상 에세이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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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생각은 생각한다고 해서 발전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라는 것도 실은 생각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경험이 조합되는 과정이다. 생각만 해서는 발전이 없는 이유다. 좋은 생각, 위대한 사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그저 ‘생각’에서 탄생할 수 없다. 실제로 생각, 혹은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유유자적하기와 유사하다. 생각과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직간접적인 경험이 부재한다면, 결국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이 깊다’는 표현은 곰곰히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더 많이 생각해고, 그렇게 더욱 자신을 돌아보다 결국 자기에게 갇히고 마는 이들을 종종 본다. ..
— 6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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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랑에 대하여
사랑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지만, 때로 이 말은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