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삼삼한 여행기 (完)

    [발리 한달 살기] 7. 바투르 산: 여행지의 언어

    여행이란 내게서 가장 먼 곳에서 내게 가장 가까워지는 일이다. 발리를 떠나기 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우붓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가량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낀따마니 지역의 바투르 산이었다. 스미냑에서 한 달 가량 머물렀던 에어비엔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에서 차를 빌렸다. 우붓까지 1시간. 우붓에서 또 1시간을 달려 낀따마니 바투르 산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진 상황이었고, 오는 길에 많은 비가 내려 운전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예약했던 숙소의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 1시간 가량 또 해매다가 결국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우여곡절 끝에 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누일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여정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바투르 산에 오고 싶었던 건 그간의 발리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


    [발리 한달 살기] 6. 디지털 노마드의 현실

    자주 가는 카페에 오전 출근 멤버들이 있다. 서로의 이름은 모르지만 커피 한잔이나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한동안 옆자리에서 함께 일한다. 여느 직장인들이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듯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발리와 디지털 노마드의 현실 발리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애초에 잘 알려진 휴양지이기도 하고,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비치, 친절한 사람들, 작업을 위한 원활한 인터넷과 업무 환경이 갖춰진 곳이기도 하다. 발리에서 머물며 일을 한다니.. 정말 멋지고 부럽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정해진 하나의 장소에 머물며 일을 하기에 이동의 자유가 많지 않은 직장인에게는 어디에서나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은 많은 심금을 올리는 문구가 ..


    [발리 한달 살기] 5. 서른 셋, 생일: 실패와 성장

    무엇을 시작하기란 어렵고, 이를 꾸준히 하는 건 더 어렵다. 이보다 더 어려운 건 실패했지만 다시 시작하고, 이를 꾸준히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은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 있는 것보다 힘든 법이다. 서른 셋. 발리에서 생일을 맞는다. 평소 생일이라는 날을 크게 게의치 않지만, 축하 인사를 건네준 지인들 덕분에 실감이 났다. 지나간 나의 20대 돌이켜보면 20대 후반의 내 삶은 실패와 거절로 가득했다. 실패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거절이었다. 거절은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더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정확히 3년 전. 서른이 되어 맞는 생일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나간 20대의 시간들을 조급히 하나의 선으로 이으려 초조해하지 말자. 점들. 조각들. 파편들. 내가 지나..


    [발리 한달 살기] 4. 누사페니다 여행: 내게 찾아온 마음가짐

    J와의 만남 발리에서 J라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같이 서핑을 배우며 친해졌다. 어느날 저녁, 한번은 맥주를 같이 마시며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인생은 파도와 같고 그러니 밀려오는 파도를 유유히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야 할 줄 알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때로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며칠만에 J라는 사람을 모두 알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J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과 진심을 다하려 했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 같았다. 그런 J의 모습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내가 저버린 가치들 20대 취준생 시절. 내 꿈은 사진 기자였다. 스물 여덟이 되며 나는 꿈을 포기했다. 모 언론사의 최..


    [발리 한달 살기] 3. 새로운 루틴

    발리에서는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하루가 반복될 거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새로운 파도와, 음식, 사람과 함께할 거라는 사실에 기대를 품게 된다. 발리에 오기 전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풀빌라에서 한 달 살기였다. 근사해 보였다. 개인 수영장이 있는 프라이빗한 숙소에서 일하며, 먹고, 쉰다는 사실이. 이제까지 대부분의 해외 여행에서는 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에서 묵고는 했다. 혼자서 여행을 했기에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했거니와 언제 어디서나도 무척 잘 자는 나였다. 뉴질랜드에서 두 달간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매일 같이 길바닥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비가 새지 않은 천장이 있다면 어디서도 잘 수 있다는 지론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내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원래는 서울 월세만큼을 ..


    [발리 한달 살기] 2. 꾸따 비치: 초보 서퍼의 파도 경험

    오후의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꾸따 비치. 그곳에서 존스를 처음으로 만났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는지 능글맞게 형 어서와!라고 말하는 존스는 나의 서핑 강사다. 발리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비치로는 꾸따, 창구, 울루와투 등이 있는데 그 중 초보자에게 가장 좋은 곳이 바로 꾸따였다. 서핑은 처음이었고 처음엔 보드에 제대로 엎드리는 것도 이어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도 고작 1주일을 배운 초보 서퍼이지만, 발리에서 많은 이들이 서핑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핑을 하다보면 때로는 좋은 파도, 때로는 좋지 않은 파도가 밀려온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내게 맞는 파도와 내게 맞지 않는 파도가 밀려온다. 아직까지 그걸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모든 파도에 잔뜩 긴장하고 보..


    [발리 한달 살기] 1. 발리행 티켓: 다시 시작할 용기

    우리의 마음엔 품을 수 있는 너비만큼의 바다가 있다. 발리에 도착한 둘째 날에야 비치에 왔다. 일몰이 멋지다는 스미냑 비치였다. 첫째 날에는 바깥에 나가보지 못했는데, 비행 여정이 너무 힘들기도 했거니와 높이가 잘 맞지 않는 의자와 책상에 앉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구석의 테이블 앞에 앉아 일을 발리에 왔는데 아직도 바다를 못봤다니! 탄식하며, 어서 바다를 보러 가야해. 어서.라고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러며 일을 하는 틈틈이 비치의 위치와 근처 레스토랑, 일몰 시간들을 검색해두었다. 일을 마치고는 바로 고젝 바이크를 타고 스미냑 비치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한 눈에 담기지 않는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해질 무렵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예상 밖 풍경이 두 눈에 가득 ..


    [발리 한달 살기] INTRO. 떠나기 전의 생각들

    이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준비들이 거의 끝났다. 공항에서의 PCR 검사만 무사히 통과된다면, 발리 도착이다. 드디어 떠난다. 부디, 무탈하길. 오랜만에 나의 안부를 빌어본다. 얼마 전, 함께 개발 프로젝트를 하던 동료들을 만났다.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에서 이번에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말하며, 그런데 전과 같은 설렘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때 맞은 편에 있던 J는 제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는 형들 있는데, 그러고 어쨌거나 또 떠나더라고요 하며 웃었다. 그런 거 같다. 나도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에서 머물며 살 계획이었으나, 어째 자꾸만 밖으로 나갈 기회들이 주어진다. 전과 같은 설렘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