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사랑에 대하여

    ㅡ 9 더 사랑하고, 더 사랑받는 일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만큼,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일에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가 동일한 방향에서, 동일한 깊이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바라볼 수 없는 방향에서, 서로 다른 깊이의 고백을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상대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제로 모든 사랑은 언제나 불균형적이다. 누군가는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기뻐하고,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 있음에, 또한 누군가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음에 말이다. 성숙한 사랑의 마음가짐은 언제나 이러한 불균형성을 기꺼이 받아들일..


    ㅡ 8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

    사랑에 대해 무어라 쓸 때면 매번 부끄러워지지만, 그럼에도 계속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는, 새로운 언어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이내 무뎌지고 마는 숱한 사랑의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에서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 내는 일상 속 사랑의 순간들이 매번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모두의 최선이라 믿는다. 사랑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모두는 저마다 최선의 사랑을 한다. 사랑에 대한 나의 최선이 과연 최선인지 고민하며, 그러한 최선이 과연 사랑일 수 있는지 고민하며, 사랑에 대해 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랑인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매번 새롭게 사랑의 내연과 외연을 다듬어 가기를 기대하며 나는 쓴다.


    ㅡ 7 사랑이라는 이정표

    사랑은 도착지가 아닌 이정표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기로에서 사랑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변치 않을 영원한 사랑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이다. 완벽한 사랑도, 완성된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정에 여정을 더하듯, 사랑에 사랑을 더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랑에 실패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있을 뿐이다.


    —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지만, 때로 이 말은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5 사랑과 마음의 경향

    세상과 사람이라는 존재 바깥에 대한 마음의 경향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어른이 되며,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배반당하거나 재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확고한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배반당한 마음을 치료하는 일이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마음은 온전히 내부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온전히 외부적인 것도 아닌, 지난 시간과 경험을 한 데 모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마음이라는 거울은 모든 상처와 아픔과 두려움과 불안, 믿음과 신뢰와 용기와 사랑의 경험과 기억을 존재 앞에 투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모두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과 마음의 경향이 일치할 때, 그러니까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둡고 비좁은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


    — 4 사랑, 온전함, 용기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에게 온전한 존재가 되려 한다. 이때의 온전함은 완전함이 아니며, 오히려 전적인 불완전함에 가깝다. 사랑은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드러내는 일이다. 사랑을 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때의 온전함이 정체된 불완전함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오롯이 자신으로 상대 앞에 서는 이유는 불완전한 서로가 사랑을 통해 함께 성장하기 위함이다.


    — 3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일부로서 타인이 아닌, 타인이 지나온 모든 시간과 경험의 총합으로서 존재를 일컫는 일이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를 헤아리듯, 사랑은 한정짓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파도가 언제나 더 큰 바다의 일부인 것처럼, 존재는 이름 안에 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지향하는 일이다. 모든 존재는 너머에서 출발하여, 이곳에서 시도된다. 사랑 또한 그렇다.


    — 2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중요한 것

    사랑은 '사랑한다'는 문장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중요한 건, 고백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깊이를 일궈가는 일이다. 사랑의 깊이는 사랑의 고백이 아닌 사랑의 실천으로 만들어갈 수 있으며, 때로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한다’는 고백 이전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고백되지 않은 ‘사랑한다’는 말의 눈망울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