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 일상 에세이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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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며,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햇살이다. 햇살이 내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에 대해 당장 하나의 이유를 꼽지는 못하겠다만, 나의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곳곳에는 따스한 햇살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햇살'하면, 차분하게 가라 앉은 고요한 지난 기억의 조각들이 망막 뒤에서 반짝인다. 매일 날이 좋아 해가 들지는 않는다. 때로는 구름이 잔뜩 껴서 흐리고, 때로는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때로는 펑펑 눈이 온다. 그럼에도 매일의 해는 그 너머에 어김없이 떠올라 있으며, 오늘처럼 내 방에 한가득 스며들기도 한다. 매일 다른 시각에, 다른 각도와, 다른 온기로 나를 찾아오는 햇살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은 이렇게 햇살을 가만히 맞고 있는 순간이 새삼스럽다. 그래서인..
그때의 바다와 나 ⏐ 일상 에세이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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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그 때, 나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에 살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집을 나서서 골목길에 접어들면 하늘의 색에 따라 때로는 푸르게, 때로는 잿빛으로 물드는 바다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곳의 바다는 인기많은 해수욕장도, 그렇다고 경치가 좋은 바다는 아니었다. 다만, 동네의 어선들이 드나드는 작고 쓸쓸한 항구가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부둣가를 따라 등대 끝까지 걸어가면 테트라포드가 겹겹이 쌓인 길의 끝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도, 길도, 바다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노트와 펜, 카메라를 꺼내들곤 했다. 그렇게 바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질문에 다르게 답해보려 애쓰며, '바다'와 바다의, '나'와 나의 좁혀질 수 없는 간..
[프리랜서 일지] 3. 프리랜서의 고충과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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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프리랜서 일지(完)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에게는 생존, 안전, 소속, 존경, 자아 실현이라는 다섯 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프리랜서인 나는 뭐랄까. 마치 중간의 욕구 충족들은 건너뛰고 생리적, 자아 실현의 욕구만이 충족되어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프리랜서로서의 고충과 단점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앞서 말했듯, 프리랜서의 고충과 단점은 앞서 말한 안전, 소속, 존경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1. 고용 불안정성과 2. 조직의 부재 3. 성장 경험의 부재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고용 불안정성 사실 요즘에서야 돈 잘 버는 프리랜서들이 몇 생겨나며 프리랜서를 지향(?)하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프리랜서는 비정규직 무계약 노동자와 ..
[프리랜서 일지] 2. 나름 괜찮은 프리랜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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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프리랜서 일지(完)
오늘은 프리랜서의 하루, 보다 정확하게는 나의 하루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생활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그리 건강하지 못한(?) 패턴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저녁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자고 아침 8시에서 9시 정도에 일어나는 나름 건강한(?) 패턴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 건강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게 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 때문이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해가 뜨기 때문에 8시 근방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이렇게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잠자는 시간도 어느 정도 규칙적이게 되는 예기치 않은 수면-기상 패턴이 생겼다. 사실 프리랜서가 정해진 시간 일..
[프리랜서 일지] 1.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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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프리랜서 일지(完)
서울로 다시 올라온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다. 휑하던 자취방에 몇 가지 필수적인 가구들을 들여놨고, 낯설기만 했던 동네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큰 창문이 있는 복층 오피스텔인데, 사실 월세나 관리비가 저렴하지는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꼭 오고 싶어 했던 이유는 큰 창문으로 드는 햇살과 분리된 작업 공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햇살과 공간을 갖는 일은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내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아침마다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비록 피곤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한 일이다. 겨울이 지나간다. 따뜻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계절의 온기는 삶에 온기를 더해준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새싹을 ..
철 지난 다이어리에 글쓰기 ⏐ 일상 에세이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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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서울의 어느 원룸에 살 무렵,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나는 매일 같이 스타벅스에 갔다. 그러다 연말이 되었고, 프로모션 스티커를 모아 내년의 다이어리(이제는 작년이 된)를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연말 선물로 받은 듯한 이 청록색 다이어리를 새로운 생각과 경험들로 빼곡히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니까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날 당시, 배낭의 맨 위에 넣어두었던 이 다이어리의 여백들이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의 순간들로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부푼 마음으로 낯선 땅에 도착한 어느 여행자는 이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결국 다이어리의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계획대로라면 다이어리에는 인도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발칸 반도와 중동의 이야기를 기록하..
혁명 말고 디자인 ⏐ 일상 에세이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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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우리는 때로 변화를 원한다. 방의 가구 배치 변화에서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 반복되는 일상과 이를 이어가는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갈망하는 범위는 다양하다. 어쩌면 변화를 갈망한다는 건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갈망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밋밋하고 단조롭게 경험되며 그저 흘러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경험되지 못하는 곳에는 현실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혁명과 디자인. 혁명은 기존의 구조를 뒤집어엎는 것이다. 건축으로 따지면 재건축처럼 기존의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다. 매력적이고 그럴싸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디자인이다. 이는 인테리어에 비유할 ..
실패와 도전: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또 다른 거절 앞에서 ⏐ 일상 에세이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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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10월이 시작되기 전 모니터 너머의 벽에 '개발 공부 시작'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뒀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적게는 서너시간, 많게는 여덟 시간이 넘게 개발을 공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분명 처음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마저도 대학교에서 1학기를 수강한 이들의 실력 정도 되겠지만 말이다. 이제 모 교육 업체의 프리 코스 수료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같은 교육 업체의 부트캠프에 지원했고 조기 테스트를 봤다. 정원 마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에 조금 초조해진 탓이었다. 이틀 만에 나온 결과는 탈락이었다. 두 개의 문제 중에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풀이 과정을 본다면, 어느 정도 근접했을텐데... 아니면, 그간의 코드 리뷰에 제대로 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