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작업실을 얻다 ⏐ 52⏐ 일상 에세이

    서울로 이사했다. 합정역 근처에 작업실을 하나 얻었다. 아직까지는 뭐 없이 황량한 공간이다. 일도 하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십 개의 방을 본 결과 결국 이곳으로 정했다. 서울에서 작업실 찾기 처음에는 자취의 명소인 관악구 서울대입구 입구역과 신림 근처에서 방을 하나 얻고 사당이나 강남 근처의 공유 오피스에 다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월 100 정도의 고정 비용이 나간다. 문제는 요즘 월세 매물들 가격이 폭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는 5,60만원이나 할까 싶어 보이는 방들의 월세가 7,80이 되어 있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고 직방과 다방, 네이버 부동산, 피터팬 등 온갖 앱을 물색하며 이 한 몸 누일 공간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합정 쪽에서 상가..


    사랑하는 J에게 ⏐ 51 ⏐ 일상 에세이

    J. 너도 알다시피 살아가며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만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해. 그러니, 싫어하는 일과 사람에 대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느라 전전긍긍하지 않았으면 해. 물론, 그런 우리에게 참을성 없고 인내심 없는 MZ 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도 있겠지. 그치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도 아니잖아? 세상은 변했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 또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 더는 성실하게만, 착실하게만 살아서는 절대 중간도 될 수 없어. 그런 순둥이들은 바보 취급을 받기 십상이지. 아닌 거 같다면, 박차고 나오자. 조금 더 용감해지자구.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거야?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어쩌면 더 좋은 ..


    스마트하다는 말의 함정 ⏐ 일상 에세이 ⏐ 49

    대학생 때 들었던 기술 윤리 수업에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꽤나 흥미로운 질문이었는데,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커브 길을 도는데 길가 한복판에 사람들이 서있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터라 브레이크를 밟아도 사람들을 쳐서 죽게할 수 밖에 없는 속도이다. 반대 방향은 낭떠러지이다. 즉, 자율 주행 머신은 속도를 줄이다 사람들을 그대로 들이 받든지, 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 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은 기말 고사 시험 문제였던 거 같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충돌 직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여 공중으로 뛰어오른다는 것 정도로 적었으려나? 그래서 학점이 그랬나 맞았나.. 여튼, 분명한 건 여..


    창백한 푸른 점 ⏐ 일상 에세이 ⏐ 48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행성이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나타나 '세상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입니다.'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결국에 그들이 맞았다. 그러나 당시 우주의 중심이 자신들이 믿는 신,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들이라는 오만함에 빠져있던 중세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재판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지구를 63억 킬로미터 밖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20여년 전 우주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나며 찍은 사진인데, 를 쓴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Blue Dot)'이라 표현했다. 다음은 칼 세이건의 글이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답정너, 계절 ⏐ 일상 에세이 ⏐ 47

    아침 해가 뜨는 시각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입춘이 지났고, 어쩌면 저 남쪽 어딘가에는 매화가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계절은 답정너라 좋다. 이제 겨울의 끝자락이야. 그러네. 많이 추웠지? 곧 봄이야. 응. 계절은 하나의 섭리다. '그러네, 응.'이라고 긍정하며 대답하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속절없이 다가와 안착하는. 작년 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가끔은 혼란스럽다. 아니, 꽤나 자주 혼란스럽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 변화하는 계절은 내게 작은 확신과 위로를 준다. 꽃은 피고 지고, 나무는 자라고 죽으며, 계절풍 또한 불어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삐딱하게 ⏐ 일상 에세이 ⏐ 46

    1. 해가 뜬지 한참이 지난 10시가 넘어서야 침대에서 겨우 기어나와 노트북을 켰다. 여러 음악들을 듣다가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된 지드래곤 . 이 노래가 2013년에 나왔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라떼는 말이지... 빅뱅과 소녀시대의 시대였는데 말이지... 2. 지디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했나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다'며, '사랑같은 것은 집어치워'라고 말하며, 바깥으로 나가 삐딱하게 행동한다. 이 노래가 참 좋은 것은 결국에 '그래서 그대가 보고 싶어요. 나와 친구가 되어 줄래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3. 마음을 다해 그때의 순간이 전부인듯, 그래서 영원한 듯 믿어보았다면 그것들이 깨어질 때 얼마나 큰 상처를 입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


    마음을 돌아보는 밤 ⏐ 일상 에세이 ⏐ 45

    1. 오랜만에 혼자서 요가를 했다. 전에 정말 친절하게 요가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자세들을 조금씩 떠올리며, 뻐근한 몸을 어찌해보려 애썼다. 요가를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작은 스탠드 불빛 하나와 매트 하나만 있으면 됐다. 한밤의 요가를 마치고 나니 문득, 집 안의 물건들 대부분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2. 매일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급했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깊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요가는 글쓰기와 닮았다. 늦은 밤, 작은 종이 위에 연필 하나를 쥐고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3. 나조차도 믿기지 않지만,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형식적인 경건을 표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삶의 태..


    요즘의 나 ⏐ 일상 에세이 ⏐ 44

    1. 올해를 시작할 때쯤에야 분주하게 거처를 옮겼고, 새로운 환경에서 상당히 많은 인풋들이 있었다. 부트캠프에서 백엔드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열심히 파이썬과 장고를 공부하고 있다. 정말이지, 하루 12시간이 넘게 모든 걸 갈아 넣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터미널을 통해 들어오는 리퀘스트에 제대로 반응하는 코드들을 보며 초심자의 만족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2. 작년 한 해는 존버의 해였다. 그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만큼, 숨 가빴고, 힘겹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믿게 되었다. 파편 같이 삶의 흩어진 모든 점들이 언젠가는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