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우리는 왜 여행지에서 사소한 이유로 다툴까? 김애란 <호텔 니약 따> 를 읽고

    김애란의 단편 소설 는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 단짝 친구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겨 왔으며, 여행 초반에만 해도 결코 부딪칠 일이 없을 듯싶었지만, 그들-은지와 서윤-도 결국 다투고 만다. 누군가 영어를 좀 더 잘한다는 이유로, 누군가 계속 물병을 들고 다녔다는 이유로, 누군가 관념적인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줄줄이 쏟아냈다는 이유로, 말하지 못한 여러 사소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서로를 증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여행지에서는 왜 사소한 일이 중요해질까 오래 붙어 있으면서, 서로 다른 이들이, 여행의 방식과 양상에 대해 거의 같은 결정을 내려야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사소한 차이와 이해, 양보가 쌓이고 쌓여 더는 사소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싶었지만 또 읽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이 좋으면서도 또 감당하기 힘들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은 를 읽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소설에 나오는 '나'가 준이 선배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할 때부터, 아, 또 크게 상처 받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해 책을 덮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뒷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잠시 멈췄다가 계속 문장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읽어버렸다. 좋은 걸까. 소설을 읽은 후에는 조금 더 머뭇거리게 되는 일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게 되는 일은. 한 여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은 정말이지 안부가 궁금하거나 혹은 특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준이 선배는 후자의 경우였다. 방송국에서 AD로 일하는 그는 한국의 달인, ..


    반려 관계에 대하여 :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개가 키우고 싶었고, 조금 자라서는 고양이가 키우고 싶었지만 실제로 키워본 적은 없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고, 그러다 혼자 나와서 살게 되었는데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못한 이유는 며칠이고 집을 비우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 찬성도 처음부터 개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져 있는 거 같은 개에게 얼음 한 조각을 주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찬성이 데려온 개, 에반은 이미 많이 늙어 있었다.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기력 때문에 동물 병원에 찾았다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난한 찬성은 치료비를 댈 수 없었고,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안락사'를 택해..


    <풍경의 쓸모> 김애란: 새로운 바깥과 안을 발견하는 일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김애란의 책을 두 권 샀다. 과 을 샀는데,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장편 소설인 줄만 알았다. 사실 은 정말이지 첫 부분에 실린 단편 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문장들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슥슥 넘겨가며 읽었는데, 별안간 소설이 끝나버려 다시 되돌아 가 문장들을 읽기도 했다. 을 읽고서 를 읽었다. 단편의 장점이라면 한 번 앉거나 누운 자리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김금희 을 읽고서 한 소설가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나'라고 평했었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동일한 생각이 들었다. * 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


    청춘과 꿈, 현실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 김애란 <서른>을 읽고서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잘 될거야,라는 말과 잘 되지 못하고 속절없이 스쳐지나가 버리는 청춘의 시간들. 그럼에도 청춘의 시기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말하기에 오늘날 청춘은 꿈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결국 쓰러져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할 때가 많다. 많은 경우 무기력은 좌절에서 온다. 그런데 좌절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