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다는 믿음 ⏐ 일상 에세이 ⏐ 34

    홀로 자전거를 타고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였다. 당시 나는 2박 3일의 식량을 짊어지고 레인보우 트레일을 지나고 있었다. 여행 첫 날, 예상치 못한 자전거 고장과 심각한 비포장 도로 상태 때문에 예상보다 얼마 달리지 못한 채 산 중턱에서 밤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산에서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있자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전에는 드문드문 차가 오가기도 하는 길 한복판에 텐트를 치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도에 봐두었던 호수까지 이를 악물고 달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예상보다 몇 시간을 더 걸려 한밤 중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내가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길이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