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아니 에르노 ‹진정한 장소›

    소위 실용서라 하는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 요즘,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를 읽는 경험은 과연 쓸모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안타깝게도 문학은 많은 것들을 외면한다. 문학은 한 개인의 주관성을 사회적 보편성으로 확장해 시대에 정치적 목소리를 형성해내지만(최소한 이를 인식하는 독자에게는), 많은 목소리가 그러하듯 그것은 발설되는 순간 응집되지 못하면 금세 흩어지고 많은 하나의 메시지일 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읽고 또 기억하려 하는 것은 흩어졌다고 해서 그 목소리가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결코 밥벌이와 사랑하며 살아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당장에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러니까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한 인생의 선..


    연희동 포셋 POSET: 아날로그적 글쓰기를 위한 공간 ⏐ 55 ⏐ 일상 에세이

    연희동에 있는 포셋 POSET 에 다녀왔다. 엽서와 편지지를 함께 파는 곳이었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떠서 우연히 저장을 해놨던 곳이었다. 언뜻 보면 특별할 거 없어보일 수 있는 이 공간이 특별했던 건 안쪽에 편지를 쓸 수 있게 하는 공간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곳에서 직접 편지를 쓰시는 분도 있었고, 또 반대편에는 사물함이 있어서 무언가를(아마도 편지를)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단순히 엽서나 편지지를 파는 곳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공간에 참여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것도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또 다른 이유로 이 공간은 인상 깊었는데, 그건 내가 아날로그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보통 노트북으로 글을 쓰지만 때로는 종이 위에 글을 쓴다. 그런데 쓰고 ..


    나에 대한 글쓰기,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이유 ⏐ 일상 에세이 ⏐ 39

    속도를 내기 전에 중요한 것은 달려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하는 일이다. 모든 것이 앞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사회에서 글쓰기는 종종 뒤를 돌아보게 한다. 내 앞에 던져지는 '그래서 얼마나 빠르게 잘 해낼 것인가?' 하는 사회적 물음 앞에서 나에 대한 글쓰기는 '그것이 그러한 방식으로 내게 꼭 필요한 일인가?' 되묻게 한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바깥을 둘러싼 물음들로부터 자신을 가다듬는 시도다. 나를 둘러 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수식어들을 걷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을 곁에 두기로 선택하는 일.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한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해 두는 일. 지난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때로 칭찬하고 반성하는 일. 누가 나의 글을 보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글쓰기 그 자체가 의미있..


    [프리랜서 일지] 10. 시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자유로운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머리와 마음에서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문장으로 글을 끝마치게 되기 때문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본다면, 이처럼 문장을 이어가며 글을 쓰는 행위가 실은 우리의 삶과 무척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이라는 한 편의 글 속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문장들을 써내려 간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내리는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들은 사실 하나의 문장들인 것이다. 낯선 문장과 함께 태어나 예상할 수 없는 문장과 함께 떠나가는 일인 글쓰기는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는 우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일과 닮았다. 물론, 현실은 정제된 글보다 통제될 수 없는 변수를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는 곳이지만, 변치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삶의 모든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