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애도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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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단편을 읽었다.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 24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학교 폭력 피해자인 동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주는 승규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한다. 어느날 승규는 동주를 폭행하다 사고로 공사장에서 떨어져 생을 달리한다. 한순간의 사고로 잠재적 가해자가 된 동주는 승규와 그들의 가족에게 어떠한 애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애도가 왜 갑자기 그의 몫이 된 것일까. -- 나는 나무문을 밀고 나와 오픈 팻말을 뒤집어놓은 뒤 퇴근한다. 터미널 안은 온통 캄캄하다. 터미널 밖도 캄캄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가로등 아래 빛이 고인 지점만 골라 밟으며 우산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훔쳤던 좋은 것, 내 손을 마주 잡고 은근한 온기를 전해주던 길이 든 가죽에 대해 생각한다. ..
존 버거 ‹A가 X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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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건 그뿐이 아니에요.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 (...) 나는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친구는 아니죠. 나는 당신의 여인이에요.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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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언제부터였을까.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을 정리하고 직업과 나의 미래를 간신히 구분해내기 시작했던 때가. 직과 업의 차이 그리고 다능인에 대해 알게 되며 내가 했던 첫번째 시도는 바로 여러 개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단 하나의 이메일만 사용했다면 이후에는 번역할 때 쓰는 이메일, 블로그 마케팅을 할 때 쓰는 이메일, 투자나 개발을 할 때 사용하는 이메일 등 여러 개로 분류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아주 좋았는데 이를 통해 각 계정에 로그인할 때마다 주의를 집중하며 하나의 일들을 차근차근 빌드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N년이..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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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싯다르타는 부유한 바라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정작 싯타르타 자신은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날 싯다르타는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모배러웍스 ‹프리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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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때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무엇보다도 컸다. 그리고 결과는 성에 차지 않을지언정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얻지 못하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깨달음은 우리가 일을 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줬다. 기록의 시작은 엉성할수록 좋다. 기록이 쌓인 후 만들어진 것과 비교했을 때의 낙차로 결과물은 더 빛난다. 부디 가벼움을 잃지 말고, 부담은 가능한 내려두길. 다만 지치지 않고 기록으로부터 기록으로 나아가보길 바란다. 퇴사를 하고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며 우리다운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 우리 브랜드 이야기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노동자, '프리워커스'라는 콘셉트를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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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택쥐페리의 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항상 같은 시간에 찾아와달라고 부탁해요. 여우의 방문이 리추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리추얼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시간 안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집에 해당합니다. 리추얼은 시간을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요.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시간을 정돈하죠. 그렇게 리추얼은 시간을 유의미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요." 리추얼의 종말 오늘날에는 의미있는 리추얼들이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 리추얼(의례)은 공동체적 형식의 반복을 의미한다. 리추얼의 사회는 상징적인 행위와 형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형식과 반복이라니? 한병철은 '새로운 삶의 꼴'을 찾아내는 과정을 리추얼을 통해 '공동체적 형식을 반복하는 것'과 연결 짓는다. 무슨 말일까?..
유진목 ‹산책과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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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상심한다. 사랑하면 모른 척할 수 없다. 사랑하면 회피할 수 없다. 사랑하면 무책임할 수 없다. 사랑하면 변명할 수 없다. 사랑하면 거짓말할 수 없다. 사랑하면 금세 말을 바꿀 수 없다. 사랑하면 재빨리 모습을 바꿀 수 없다. 사랑하면 더 빨리 갈 수 없다. 사랑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없다. 사랑하면 버릴 수 없다. 사랑하면 모를 수 없다. 모르는 것은 사랑하면 폭력이 된다. 아는 것은 사랑하면 허영이 된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사랑하며 살지 않는 사람보다 적다. 언제나 그랬다. 다수는 세상을 움직이고 소수는 세상을 바꾼다.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게 지난 연애는 고통이자 성가심의 연속이었고, 산책은 그러한 순간으로부터 잠시 빠져나와 자신을 진정시키는 시도였던 거 같다. 매..
정혜윤 ‹독립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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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독립은 여행›에는 오래만난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잠시 방황하다가 자신만의 아지트를 찾아 아름답게 꾸미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그녀가 멋지고 야무져보였다. 프리랜서. 다능인. 크루. 융지트. 자유. 사랑. 우정. 따뜻한 시선. 능력자. 노력하는 사람. 안목.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단어들을 나열해본다. 아, 여기에 유대와 연대라는 단어도 추가해야 할 거 같다. 혼자서 일하는 솔로 워커들의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선택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