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똑바로 떠요." 게슴츠레 뜬 눈을 보며 그가 내게 말했다. "흐릿하게 보지 말고, 똑바로." 난시가 있지만 안경을 쓰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지 않으면 상대의 얼굴 초점이 잘 맞지가 않는다. 그리하여 가까이에 있지 않은 것을 볼 때면 내 눈은 더 얇고 가늘어지곤 했다. 상대를 보다 정확하게 보려는 나름의 시도였다. 그런데 눈을 똑바로 뜨라고? 무엇이 그대를 더 명확하게 보는 방법일까? 눈에 힘을 주어 크게 뜨는 것? 아니면, 눈의 힘을 풀고 가늘게 뜨는 것?
점심 무렵에는 카페 누크에 갔다. 작년 발리에 왔을 때 자주 왔었던 곳인데, 확장 공사를 했는지 내부는 더 넓어져 있었다. 사실, 내부와 외부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개방형 공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록 뷰는 논밭일지언정 이러한 건물 구조는 발리 곳곳에서 꽤나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보통의 건축물은 내부와 외부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내부인을 보호하는 것이 건물의 일차적인 목적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곳 발리에서는 그러한 개념이 자주 무시된다. 카페의 카운터에서, 고객들이 앉는 내부, 그리고 논밭으로 막힘없이 이어지는 흐름은 비치 클럽의 카운터에서, 고객들이 앉는 베드,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흐름과 동일하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구조도 비슷하다. 발리 대부분의 숙소에는 발코니가 있는데, 그리하여 침실, 발코니, 플루메리아가 핀 바깥이 이어져있다. 발리의 많은 공간들의 구조는 분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저녁에는 로컬 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세트 메뉴를 권하는 주인장 아저씨를 겨우 물리치고, 가짓수를 줄이고 줄여 새우와 조개, 나시고랭, 샐러드를 시키기로 합의를 봤다. 이렇게 시켜 먹고 보니 원화 기준 13,000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가게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 깊은 곳이었다. 사실, 평범한 로컬 가게였을 수 있지만 냉장고 옆에 있는 수조와 그곳에 있는 예사롭지 않은 크기의 물고기 때문일 수 있었다. 관상용으로 넣어두기에는 너무 큰 물고기 아닌가? 흠, 그럼 작은 물고기들은 괜찮다는 소리? 뭐야, 해산물 먹으면서 물고기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거야? 과연 수조 안에 있는 물고기들의 세계는 손바닥 몇 뼘 크기의 직육면체에 한정된 것일까? 그런 물고기에게 수조는 안일까, 밖일까?
저녁에는 펍에 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젊은 친구를 만났다. 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나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보였다. 30대를 지나고 있던 우리는 비슷한 생각과 고민, 그리고 지난 경험들을 솔직하게 주고 받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펍에서 3시간이 훌쩍 넘게 지나 있었다.
"씨 유 어게인"을 외치고 그랩을 타고 숙소에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무거운 눈을 감으니, 애써 구분짓던 나와 바깥의 구분이 비로소 모호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몇 가지 생각들이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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